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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koi)의 법칙/김미원

작성자 사진: 정혜선정혜선

최종 수정일: 2024년 4월 10일

코이(koi)의 법칙

                                                            김미원

                                                                 

  코이라고 불리는 비단잉어는 잉엇과의 물고기로 색이 화려해서 주로 관상어로 키우는데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한다. 그 물고기를 집에서 작은 어항으로 키우면 5cm~7cm까지 자라고   수족관이나 연못처럼 큰 공간이면 30cm 미터 이내로 자라며, 커다란 호수나 바다처럼 넓은 공간에선 1m 안팎까지 자란다고 한다. 코이처럼 처한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해서 이것을 코이(koi)의 법칙이라 부른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까지 남자아이처럼 자랐다. 소꿉놀이보다 남자아이 놀이인 전쟁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그리고 불꽃놀이 하는 걸 좋아했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종일 비를 맞으며 놀기 좋아했고 무지개 끝에 있을 선녀를 보기 위해 무지개를 좇아가느라 길을 잃은 적도 많았다. 그러던 내가 중학생이 되어 치마라는 것을 입는 일이 생긴 후 변화가 생겼다. 여학생만 있는 것도 신기했고. 학교 도서관엔 오빠들이 보는 책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많은 책에 더 놀랐다. 나는 수업이 마치면 책은 많으나 자리가 부족해서 늘 부족한 도서관으로 조마조마하면서 달려가야 했다.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순간이 정말 기뻤다. 그곳은 집에는 없는 나만의 독방이고, 나만의 책상이 있고, 나만의 책들 같아 매일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책 읽기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책을 읽은 만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아이로 커갔다. 처음엔 친구들의 고민에서 동네 언니들의 묵직한 고민까지 들어주다 보니 내가 읽는 책의 폭도 넓고 깊어져 갔다. 나에게 사춘기는 너무 평범한 애들 짓거리처럼 보였으며, 그로 인해 세상 물정도 일찍 알아버렸다.

내가 책을 좋아한 이유엔 나의 잦은 병치레도 있다. 나는 큰 지병은 없는데 자주 아팠고 그중 천식이 제일 심했다. 잦은 기침으로 수업에 방해되지 않으려 복도에서 간호실에서 운동장 벤치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공기가 주는 편안함 속에서 맘껏 기침했고, 맘껏 아팠으며 맘껏 하늘을 봤다. 교과서 대신 소설책으로 홀로 지내는 시간을 덤덤히 받아드렸던 그때 책은 다행히도 나를 고독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때의 엄청난 독서량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대목이 많은 것도 아니며 이해 못 하면서도 읽은 것도 많다. 그때 난 명작을 읽었다는 뿌듯함과 좋은 책을 붙들고 있는 나를 대견해 했던 것 같다. 아직도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도서관을 많이 다녔는데 그곳에서는 기침으로 자리를 비운 적이 별로 없다.

  얼마 전 30년 넘게 쓴 일기장을 컴퓨터에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편지지보다 긴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제목이 “내가 하고 싶은 일 100가지”라고 적힌 일종의 버킷 리스트인 그것을 언제쯤 적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파리에 있는 에펠탑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고 싶다는 오글거리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 20대 초쯤 아닐까 추측한다. 리스트에 있는 100가지 중엔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다. 그 내용엔 내가 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는 것이 보여 우선 반갑고 기운이 났다. 그 애씀의 원동력이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했던 무작정 읽었던 책 속의 글들이 나에게 심어준 기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머슴아이 같던 어린 시절은 나에겐 어항 속이고, 아팠기에 만난 책들은 나에게 수족관일 것이다. 그리고 쥐뿔도 없으면서 아직도 꿈을 꾸는 나의 지금이 바닷속이면 좋겠다고, 그 바닷속에서 아름다운 비단 빛을 뽐내는 나 자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다.  (201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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