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자리는 고스란히 옥수수 밭으로 바뀌어
부제: 이현애, 지명희, 한성미
친애하는 당신, 안녕하세요? 이현애, 지명희, 한성미 님.
미국에 와서야 처음 만나본 내 북녘 동포입니다. 안녕이란 말로 당신에게 인사를 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난 당신이 정말로 안녕했으면 합니다.
워싱턴 D.C. 국회 캐피털 힐의 회의장에서 당신들은 북한의 여성에 대해, 그리고 인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목숨 걸고 떠나온 길이었기에 탈북에 실패할 때마다, 혹은 어떠한 이유로든―타당성은 차치하고― 보위사령부에 체포되고 재산을 압수당할 때마다 어김없이 처박혀야 했던 감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고문과 매질의 나날을 힘겹게 언어로 옮겨낸 용기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무릎 꿇거나 기마자세로 꼼짝 못하게 벌을 세우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시에는 모욕적인 욕설을 들으며 매를 맞았지요. 화장실 없는 감옥소 안에서 방 마다 고무 통 하나에 대소변을 해결하고, 가득 찰 때까지 변기를 비우지 못하게 하는 저질의 괴롭힘이 만연한 곳. 어느 날은 소변만 허락한다며 대변 보는 이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일까지 있었지요. 현실을 노골적으로 증언하자면 토악질나는 언어들을 발음해야 하는데, 스스로 제 입을 더럽히는 치욕을 다시 한번 무릅쓰고 미국 D.C.의 청중을 향해 당신들은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삶이지만 아직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구하지 않으면 압사당하고 침몰해버릴 무고한 북한의 보통사람들을 제발 도와 달라고. 우연히 들어온 듯한 국회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이 되어 눈물 흘렸습니다.
북한에선 ‘인권’이란 말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겐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한 권리가 있다는 진실이 북한 내에서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당당하게 개인이 사회 구성원들과 조화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가 오직 북한의 체제유지를 위해서만 악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소중하다’ vs ‘김정은 동지를 위해서는 고난도 슬픔도 행복이다’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 된 후 교화소로 끌려간 당신은 나체로 온몸 수색을 받았습니다. 숨긴 돈이 있는지 찾기 위해 위생장갑도 끼지 않은 손가락이 질 속까지 뒤졌습니다. 재판도 없이 예고없이 처형되기 일쑤인 그곳에서 ―뇌물이 없었다면 살아 남지 못했을― 그녀가 3년형을 살고 풀려나온 날, 근처 역사에 걸린 큰 팻말에 ‘김정은 동지를 위해서는 고난도 슬픔도 행복이다’ 적힌 글을 보고 극심한 구역질과 분노에 몸서리친 그때를 당신은 고백했지요. 교화소에서 나오는 너무 많은 시체는 처치곤란으로 한꺼번에 구덩이에 묻히는 데, 그 무덤자리는 고스란히 옥수수 밭으로 바뀌어 매년 알이 꽉 찬 옥수수를 키워낸다는 말을 덧붙이는 당신의 눈동자가 추수 끝난 벌판처럼 공허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말아요, 우리! 분단된 세월이 길다고는 하나 우리는 한 민족이며 통일되어 함께 살아야 할 한 가족입니다. 태평양 건너에서 조국을 멀리 두고 살다 보면 어디서 한국말만 들려도 내 피붙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활짝 열립니다. 한반도 안에서 일어나는 기쁜 일에는 뿌듯함이 풍선처럼 부풀고, 끔찍한 사건사고 소식엔 마치 내 친지에게 일이 생긴 것 같이 발을 동동 구릅니다. 닿을 수 없기에 더욱 그립고 안타까운 내 가족들의 이야기, 이것이 북한 동포들을 향한 저의 마음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신 당신, 감사합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마을에서 오늘도 위태로운 외줄에 선 우리 동포들의 손을 잡아 주도록, 세계의 눈이 한번 더 그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당신의 목소리에 메아리를 보탭니다.
당신의 안녕을 진심으로 빌며,
정혜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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